나는 미국인 남편과 결혼했다. 그리고 결혼과 함께 남편의 부모님과도 가족이 되었다. 내 남편의 부모님은 내가 사회에서 만났더라면 결코 대화조차 섞지 않았을 사람들이다. 다행히 시댁이 차로 21시간, 비행기를 타고서도 3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한국처럼 자주 보거나 그러진 않는다. 한국처럼 명절 때 남의 집 제사상을 차려야 할 필요도 없고 김장도 안 한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 인종이 다름에서 오는 차별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너무 힘들다.
정치 강요
시부모님은 굉장히 강한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가끔 남에게 가족이라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소셜 미디어에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곤 하는데, 어떤 정치인의 스캔들이 터졌을 당시 그를 옹호하는 사진과 게시물을 올린 이후 그들의 게시물이 보기 싫어 게시물 팔로우를 취소했다.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특정 정당/인물을 지지하면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자신들의 선택이 옳음을 이해시키려고 하고 특정 정치인의 잘못을 자신들이 지지한다는 이유로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들처럼 특정 인물과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나와 남편을 보며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취급을 하기도 하며 아주 잘못하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며느리 무시
1) 며느리를 미국 영주권 따려고 남편과 결혼한 사람 취급
물론 그들에겐 농담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농담을 가장한 진심이었을까? 시아버지가 나에게 영주권 따려고 결혼했다는 식으로 말했을 때 너무 놀랬다. 그런 농담을 한다는 자체가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충격적이고 공격적인 농담이었지만 그 말을 했던 당시에는 너무 당황해서 그냥 다른 토픽으로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나는 25개국이 넘는 국가를 여행했고 해외 경험도 꽤 많다. 하지만 한 번도 미국을 여행하거나 미국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어쩌다 보니 미국인인 남편을 만나서 결혼했고 지금 미국에 살게 된 것이다. 나는 내가 남편보다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미국으로 온 이후로 커리어적으로 쉽지 않아서 단순히 돈을 얼마나 벌어오느냐의 부분에서 보면 남편보다 내가 못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일을 하고 취집의 목적으로 결혼한 것이 결코 아니다.
남편은 아쉽게도(?) 내가 이런 엄청난 말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 없었다. 남편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했을까?
2) 우리 아들과 시간 보내게 넌 좀 어디 가있어라.
나는 물론 시부모님과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너무 좋다. 하지만 며느리한테 "우리 아들 못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우리 아들이랑 오붓하게 시간 보내게 어디 좀 가 있을 수 있니?"라고 말하는 게 정상인지는 모르겠다. 그것도 며느리의 나라가 보고 싶어 왔다는 한국에서...
3) 짜증은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높이 올라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남산 타워에 올라가지 않았다. (근데 남산타워에 오고 싶어 했던 것은 시어머니였다.) 나는 이미 남산타워에 올라간 적이 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함께 밑에 있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본인은 괜찮다며 다녀오라고 했다. 정작 시아버지와 내 남편(그들의 아들)은 시어머니 걱정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시아버지는 호기심이 많아서 남산타워에서 정말 엄청 긴 시간을 필요로 했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어머니를 걱정하며 똥줄이 탄 것은 나 하나였다. 시아버지가 만족할 만큼 다 보고 내려와 급히 시어머니에게 혼자 뛰어가서 오래 기다려서 미안하다고 하니 나에게 온갖 짜증을 냈다. 그러더니 시아버지에게 쪼르르 달려가 보고 싶었다며 애정 표현을 하는데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난 남의 집 귀한 딸인데 왜 나에게 짜증을 낸 걸까?
인종차별
나는 인종차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교육 못 받은 불쌍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근데 내 시부모님은 학력도 좋고 젊은 시절 좋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 지금은 은퇴 후 아주 편안하게 잘 살고 있다. 시부모님을 보며 드는 생각이 인종차별은 교육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시부모님은 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백인우월주의가 있다. 너무 웃긴 스토리들이 있다.
1) 한국 사람들은 다 똑같이 생겨서 범인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범죄율이 낮다. (?)
남산타워에 갔다가 택시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어머니가 갑자기 밖에 사람들을 보다가 한 말이다. 시어머니는 범죄 천국 미국에 살다가 한국 여행을 하며 좋은 치안에 아주 놀랐다. 밤에 야경을 보러 걸어 다니면서도 자신이 사는 동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뭐가 삐뚤어졌는지,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했다. 말 자체도 말이 안 된다. 다 똑같이 생겨서 범인을 잡을 수 없으면 오히려 범죄율이 올라가는 것 아닌가..? 하여튼 포인트는 '한국 사람들은 다 똑같이 생겼다.'이다. 뭐 한국인들도 미국인들 보면 다 똑같이 생겼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 며느리 앞에서 저런 식으로 비꼬면서 말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굉장한 인종차별이며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말하니 본인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서 오히려 당황스러워했다.
2) 한국 사람들은 왜 염색을 안 하나? 너무 검은 머리들이 많아서 힘들다. (정확히는 overwhelmed 단어를 사용했다.)
서울역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오면서 시어머니가 한 말이다. 당신은 지금 검은 머리 한국인들이 사는 한국에 있다. 이게 할 말인가? 진짜 참신하고 멍청한 말이라서 웃겼다. 당신 편하라고 우리가 염색을 해야 하나? 금발? 빨간색? 무슨 색으로..?
이것 말고도 아주 스토리가 많은데 굵직한 것들만 말하자면 이 정도이다. 남편에게 내가 느낀 모든 것에 대해 말했고 남편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본인 잘못도 아닌데...) 심지어 우리 부모님에게 까지 당신들의 딸이 이런 경험을 하게 되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나는 시부모님과 되도록이면 만날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휴가도 같이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하니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남편은 이해했다. (사실 이번 한국여행을 통해 본인도 알지 못했던 부모님들의 나쁜 모습을 봐서 내 남편도 충격이 큰 듯하다.) 원하지 않았는데 만들어진 가족관계는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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